“게임이라는 영역은 철저히 ‘상업적인 아트(Art)’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로드컴플릿은 작품성 있고 깊이 있는‘게임다운 게임’을 만들겠다는 비전 아래 대중적인 성공을 지속해서 이어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이제 13년 차 중견 게임 기업으로서 좋은 게임을 어떻게 시스템화해서 지속가능한 수익을 창출할까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콘텐츠금융 뉴스레터팀은 10월 14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에 위치한 게임 기업 로드컴플릿(loadcomplete)에서 배정현 대표를 만났다. 2009년 설립된 로드컴플릿은 모바일게임 전문 개발사로 10여 년간 15종 이상의 캐주얼 및 미드코어(mid-core) 게임을 개발해왔다. 대표작으로 모바일 액션 RPG ‘크루세이더 퀘스트(Crusaders Quest)’가 있으며, 2021년 2월 카카오게임즈와 글로벌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한 신작 ‘가디스 오더(Goddess Order)’를 내년 상반기 출시 목표로 개발 중이다.
크르세이더퀘스트 로고
‘내가 하고 싶은 게임’에서 ‘직원들이 만들고 싶은 게임’으로
배대표는 아주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카네기멜론대학(CMU) Entertainment Technology 석사를 거쳐 美 게임개발사 Hidden Path Entertainment에서 게임 기획자로 일한 경력이 있다. 미국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여동생 배수정 이사와 함께 2009년 한국에서 로드컴플릿을 창업했다. 비슷한 시기 창업한 ‘애니팡’으로 유명한 썬데이토즈, ‘쿠키런’데브시스터즈와 함께 1세대 모바일 게임기업으로 손꼽힌다.
“2009년은 아이폰이 막 등장한 시기여서 아이폰으로 창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업 당시엔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하자는 욕심이 컸지만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게임산업은 트렌드에 굉장히 민감하다 보니 창업 이후에는 오히려 순간순간 어떻게 하면 적응을 잘할지에 집중했고 그것이 승부수였던 것 같습니다.”
창업 당시 배대표가 하고 싶던 아이템은 ‘닌텐도 Wii’ 같은 가족용 게임, 즉 일부 마니아가 아닌 대중의 사랑을 널리 받는 게임이었다. 그래서 창업 초기엔 ‘범핑베어’, ‘디스코판다’같은 캐주얼 게임에 집중했다. 특히 ‘범핑베어’는 로드컴플릿의 스마트폰 게임 최초이자 야심작으로 삼성전자와 텐센트로부터 투자받아 3년이라는 개발 기간을 들여 제작했다.
“2011년에 출시한 ‘범핑베어’는 스마트폰으로 곰을 기르는 일종의 ‘다마고찌’ 같은 게임입니다. 특별한 점은 단순히 내 곰만 기르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폰과 접촉하면 서로의 곰끼리 결혼도 하고 아기곰까지 생기는 식이었어요. 저희는 이걸 ‘소셜 육성게임’이라 불렀는데 결과를 놓고 보면 흥행에는 실패했어요. 그때가 대중에게 아직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이라 시기적으로 일렀던 측면이 있었고, 모바일 게임 기업으로 주목받으며 투자도 많이 받다 보니 많은 자원을 쏟아부어 너무 큰 작품을 만들려던 욕심이 컸던 것 같아요.”
‘범핑베어’이후 2013년 중국 시장을 겨냥한 ‘디스코판다 for Kakao’를 출시했지만 역시 빛을 보지 못했다. 2개의 게임을 출시하고 나니 5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회사는 재정적으로 힘들어졌다. 그때까지 직원 수도 20명을 채 못 넘어섰다.
“두 개의 게임 모두 좋은 작품이었고 창업가로서 좋은 경험이 됐습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때에 RPG게임을 만들고 싶어 했던 작은 팀이 제작 중이던 ‘크루세이더퀘스트(이하 크퀘)’를 눈여겨보게 됐습니다. ‘크퀘’는 2014년 11월 출시 후 1년 4개월 만에 누적 다운로드 1500만(2021년 10월 현재 2500만)을 돌파하면서 그동안 오로지 가능성만으로 5년을 버텨온 회사를 갑자기 매출을 내는 건실한 기업으로 거듭나게 해줬습니다.”
‘크퀘’는 모든 면에서 로드컴플릿 역사의 전환점이 됐다. 출시 후 3년 만에 직원 수가 70명으로 늘었고(현재 110명), 특히 배대표가 진출을 꿈꾸던 중국 및 대만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내 6년간 매출 1000억 원이라는 엄청난 이정표를 달성했다.
배대표는 ‘크퀘’를 두고 “사업성과 작품성, 두 가지가 조화를 잘 이룬 타이틀”이라고 평가했다. 로드컴플릿 역사상 최고 흥행작인 ‘크퀘’는 액션과 퍼즐을 합친 형태에 레트로 느낌의 ‘도트그래픽’을 이용한 미드코어 장르로 이전의 캐주얼 게임보다 작품성 측면에서 깊이 있고 다소 어려운 게임이지만 게임 자체가 참신하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크퀘’가 흥행하면서 회사의 방향성이 저의 초기 비전과는 달라졌습니다. 당시 게임 시장의 트렌드가 이미 미드코어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던 것을 캐치해 적응을 빠르게 했던 것이죠. 대표인 제가 모든 것을 이끌어 가는 방식이 아니라 좋은 리더를 세워서 그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줘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크퀘'의 성공을 보면서부터였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게임’이 아니라 ‘우리가 하고 싶은 게임’ 쪽으로 비전이 바뀌었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로드컴플릿 팀원 단체 사진
지속가능한 시스템 구축위해 핵심 리더 세워 역할 분담
이후 로드컴플릿에는 직원들이 제안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게임을 제작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트렌드가 워낙 빠르게 바뀌는 게임업계에서 창업주 한 사람의 판단에만 의존해서는 대응이 느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배대표는 로드컴플릿의 게임 하나하나를 연예기획사에 소속된 아이돌 그룹에 비유했다. 기획사의 경우 인기 있는 특정 그룹 하나만으로는 성장성에 한계를 지적받듯이 로드컴플릿 역시 ‘크퀘’라는 단일 프로젝트로 오랜 시간 서비스를 잘 해왔지만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여러 타이틀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유저들과 함께 호흡하며 서비스를 업데이트 해야 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각각의 다른 정체성을 가진 게임을 개발하는 일은 창업자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핵심 리더들을 잘 세워서 다양한 정체성의 타이틀을 제작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법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그러므로 배대표의 역할 중 핵심 리더를 세우는 일은 매우 중요하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동안 대표인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다가 다른 사람들을 리더로 세우는 그 과정이 매우 힘든 전환이었던 것 같습니다. 초기엔 제가 모든 것을 직접 관리했다면 지금은 하이브리드 상태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아예 새롭거나 위험한 장르에 도전할 때는 대표가 책임을 지고 초반에 토대를 닦는 일을 하고, 그 외 이미 정착된 분야는 리더들에게 맡기는 식으로 역할 분담을 하고 있습니다.”
배대표가 리더를 세우는 기준으로 ‘좋은 꿈을 꿀 수 있고, 꿈을 향해서 사람들을 잘 이끌 수 있는 사람’을 꼽았다. 게임업계가 운이 좌우하는 흥행사업이기도 하기 때문에 리더를 체계적으로 길러내기 어려운 산업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므로 모든 걸 다하는 한 명의 리더보다는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는 리더 등으로 여러 명의 리더를 세워 서로 보완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4개 개발팀에 2명씩, 총 8명의 리더가 있다.
로드컴플릿의 게임 개발 과정은 여느 게임회사와 다르지 않다. 사내 제안회를 통해 진행 여부를 결정하는 ‘아이디어 제안 과정’, 게임의 방향성이나 개발 전 리서치 및 툴 개발을 하는‘프리 프로덕션’단계를 거쳐, 코어를 만들고 서비스를 위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프로덕션’순으로 진행된다. 여기에 로드컴플릿만의 독특한 과정이 추가된다. 내부적으로는 ‘프리토타입’이라고 부르는데, 프로토타이핑 이전에 2~3주안에 빠르게 시제품을 만들어서 마케팅(유저 테스트)을 해보는 과정이다. 주로 캐주얼게임 영역에서 가능하며 마케팅이 되는 게임이냐 아니냐를 빠르게 판단하고자 하는 것이다.
“대부분 게임의 경우 2~3년 온갖 자원을 들여서 만든 후에야 마케팅 테스트를 해보고 지표가 잘 안 나오면 게임을 접기도 합니다. 왜 게임을 다 만들고 나서 그 과정을 해야 하는지…. 저는 이 지점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겁니다. 마케팅 테스트를 초기에 빨리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프리토타입’프로세스를 도입한 겁니다. 캐주얼게임이라 가능한 일이긴 한데 미드코어쪽에는 이런 프리토타입 검증을 어떻게 도입할지 아직은 고민중입니다.”
‘프리토타입’과정은 일종의 FGI(포커스그룹인터뷰)처럼 다른 산업에서는 보편적으로 시행하는 마케팅 기법에 해당된다. 미리 마케팅을 해보고 유저들의 반응이 어떤지 예측해보는 것으로,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것만큼 검증도 중요하므로 좀 더 일찍 자주 검증을 하자는 생각에서 나온 일종의 ‘린스타트업’개념이다.
아직은 한국의 게임 유저나 제작진 모두 꺼리는 프로세스로 특히나 게임의 조기 유출로 주가에 영향을 줄 수도 있어 대기업들은 하기 힘든 시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히려 돈과 시간등 자원을 절약할 수 있어 신생 모바일게임 회사들이 많이 시도하는 편이며, 성공사례로는 ‘랜덤다이스’로 작년 1500억 매출을 올린 111퍼센트가 대표적이다.
크루세이더 퀘스트 게임 이미지
150억 원대 투자유치 마무리 단계…최소한의 검증 보여줘라
로드컴플릿은 현재 ‘크퀘’의 명성을 이을 차기작으로 ‘가디스오더’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가디스 오더’는 PC 온라인 게임 ‘그라나도 에스파다’에 참여했던 정태룡 PD가 개발을 맡아 ‘크퀘’ 개발자들과 함께 제작 중인 프로젝트로 비록 제작진은 같지만, 완전히 다른 스토리와 세계관, 게임방식으로 구성된다. 지난 2월 카카오게임즈와 퍼블리싱 계약을 맺어 내년 상반기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2014년 ‘크퀘’의 성공으로 승승장구하던 로드컴플릿은 6년만인 2020년 초 투자유치에 나섰다. 이전까지 월 80억 원대를 잘 유지해오던 매출이 지난해 중국 정부의 판호 이슈로 인해 50억 원 대로 일시적인 하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캐주얼게임 분야에서 ‘크퀘’만큼 좋은 지표가 나오면서 내년 매출은 호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게임분야 투자시장이 많이 위축됐음에도 불구하고 로드컴플릿은 최근 150억 규모로 투자유치를 순탄하게 진행 중이다. 배대표는 “1년 반이라는 긴 시간 투자유치를 진행하면서 모바일게임 시장 자체도 포화된 느낌이고 우리 회사의 업력도 긴 편이라 투자자로부터 요구받는 기대수준이 많이 높아진 것을 느꼈다”며 “과정 자체는 힘들지만 그래도 빌드업 과정이라 생각하고 좌절하지 말고 계속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쌓아가면 결국 기회가 올 것”임을 강조했다.
“‘로컴’의 다음 스텝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로컴’이 이 언제까지 하나의 게임‘크퀘’로 버티다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내년에 카카오게임즈와 가디스오더를 잘 론칭해서 캐주얼게임쪽으로 애초 목표로 했던 글로벌 성과를 낼 수 있는 회사로 탈바꿈할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투자유치 과정이 어려웠지만 좋은 도전이 된 것 같습니다.”
RPG은 배대표가, 캐주얼게임은 배수정 이사가 맡고 있으며 양 분야의 매출 비중은 50대 50이다. 배대표는 과거에도 그랬듯 앞으로도 어느 한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양쪽 DNA를 다 가진 것이 지금의 로드컴플릿의 정체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게임기업은 천편일률적인 느낌보다는 좀 더 다양한 면을 갖고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크퀘’역시 기존 RPG에 비해 깊이도 있지만 접근성도 좋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 회사의 DNA에서 나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궁극적인 비전은 새롭고 깊이도 있으며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입니다.”
로드컴플릿의 단기적인 목표는 3년 내 글로벌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새로운 RPG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본받고 싶은 기업으로는 지난달 유니콘 기업으로 등극한 ‘가디언 테일즈’의 콩스튜디오와 ‘원신’을 멀티플랫폼에 출시하여 전세계 유저의 사랑을 받는 미호요를 꼽았다. 투자유치를 앞둔 후배 콘텐츠 기업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게임회사의 경우 ‘크퀘’ 같은 히트작이 없을 경우 성과가 아닌 희망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땐 어떻게든 비전을 보여주고 최소한의 검증된 지표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검증이란 마케팅을 미리 해본다든가, 소그룹이지만 유저 반응을 모아본다든가 해서 얻게 된 수치적인 것들을 말하는 거죠. 투자자들도 결국에는 LP를 설득하기 위한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에 작은 근거 하나라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단순히 희망이나 꿈을 이야기하기보다 원하는 비전과 최소한의 결과에 대해 투자자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새로운 걸 시도하겠다면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 책임은 지표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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